500년간의 사제의 인연(도동서원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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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고향 사랑 조회6,315회 댓글0건관련링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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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시대 영남 사림학파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보셨나요.
실제 우리고장에
그분들의 숨겸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.
바로 "도동서원"입니다.
펜션에서 찾아가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
아이들과 찾아가면 좋은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.
이곳은 중종 때 도학정치가였던 조광조의 직계스승인
한훤당 김굉필을 기리는 서원으로서 1604년 ( 조선 선조 37년)때
건립되었습니다.
여기에서 500년간의 사제의 인연을 느낄 수 있습니다.
한원당 김굉필의 스승은 점필재 김종직으로서
영남 사림학파의 "종조"입니다. 제자 김굉필은 나이 21세때
스승 김종직을 만나 가르침을 받습니다.
스승 김종직은 김굉필의 됨됨이를 높이 평가하여 첫 만남부터
시 한편을 지어줄 정도였습니다.
제자인 김굉필도 스승의 가르침을 새겨 생활속에 실천했다고
합니다.
이러한 사제의 인연은 사화(士禍)를 통해 더욱 드라마틱해집니다.
1498년(연산군 5년)의 "무오사화"가 일어납니다. 이 사화는 김종직이 쓴 '조의제문'이 문제가 되어 김종직은 부관참시되고 김굉필은 귀향을 가게 됩니다.
김굉필의 귀향은 개인으로는 비극이지만, 또 다른 운명적인 만남을
예정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조광조와의 만남이었습니다.
조광조 - 조선 성리학의 정맥이라는 평가를 받는 분이시죠.
마침 조광조의 아버지가 귀향지를 관할하는 관직에 있어
조광조를 4년간 가르쳤다고 합니다.
김굉필의 원칙주의가 조광조의 인생에
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아시겠죠.
무오사화를 겪은 지 얼마되지 않은 1504년에
두번째 사화인 갑자사화(甲子士禍)가 일어납니다.
이때 김굉필은 영남사림파의 거두라는 이유로
죽임을 당합니다.
이러한 사화는 결국 2년후 "중종반정"이 일어나고
잘 아시다시피 조광조는 중종의 개혁정치에 선두에 서게 됩니다.
하지만, 불행히도 1519년(중종 14)의 기묘사화(己卯士禍)때
조광조 역시 죽임을 당하니, "
참으로 안타까운 일 입니다.
어떻습니다.
도동서원은 김굉필을 기려서 세운 서원이라하니
조선조 선비들의 기개가 느껴지지 않습니까?
특히,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신 분들의 다수가
그 후예였다는 점이 더욱 생생히 다가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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